중앙일보 주간중앙 칼럼 - (강영만 감독의 영화노트) 글쓴이 강영만 감독은... 93년 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후 94년 도미. 뉴욕 맨하튼 The New School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2000년 9월 '큐피드의 실수(Cupid's MIstake)'으로 감독 데뷔, 같은 영화로 최저예산 제작 기네스북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퍼스트 테스트먼트(1st Testament: CIA Vengeance)'등을 연출. 2002년 미국내 아시안 마사지 팔러를 그린 '비누 아가씨(Soap Girl)'는 빅베어 국제 영화제 청중상을 받았다. 움직이는 그림이 좋아 영화를 시작했다는 그는 웃을때면 그의 고향 충남 서산의 흙냄새가 그대로 느껴지는 소박한 남자다.
Sunday, January 02, 2005
3. 터미네이터 3 (Terminator 3)
3. 터미네이터 3 (Terminator 3)
감독: 조나단 마스토우
할리우드 일자리를 만들어준 슈워제네거
2003년은 아널드의 전성시대인가 보다. 12년 동안 잠적해 있던 '터미네이터 3'가 마침내 제작, 완성되고, 아널드는 주지사가 되었다. 그것도 같은 해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에게 운이 따랐다.
요즘 들어서 블록바스터 영화들이 대부분 캐나다와 호주, 유럽에서 촬영한 반면에 이 영화만은 의리를 지키며 다우니, 다운타운 로스 엔젤레스, 샌버난도 밸리. 베버리 힐스 등 모두 인근 로스엔젤레스에서 촬영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LA에는 헐리우드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큰 영화들이 해외 밖에서 제작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많이 잃자 파업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돈을 아끼려는 스튜디오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아널드에게 운이 좋게도 '터미네이터 3' 그 많은 영화인력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특수 분장팀만 해도 150명이 넘었으며, 6개의 다운타운 스튜디오에 세트 제작에 가담한 인원만도 350명이 되었다. 그 영화제작에 딸린 식구들, 케이더링 하는 인력들까지 계산한다면 엄청난 숫자가 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들의 숫자가 주지사 선거에 아무래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1984년, 두 번째 편은 1991년. 세 번째를 제작하는데 12년이 걸리는데는 영화판 내면에 보이지 않는 판권에 관계된 알력 때문이다.
터미네이터 프랜차이즈 영화가 아널드가 주지사가 되는 시기를 맞추어 영화제작자들이 기다렸다고 보지 않는다. 아무리 유명한 제작자들이라도 영화가 완성되려면 운도 많이 따라야한다. '메모리 오브 게이샤' 같은 경우만 해도 처음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기로 되어 있다가 계속 연기되는 바람에 아직까지 제작에 들어가지 않고 있을 정도다.
촬영을 끝내 놓고도 투자들끼리 서로 소송에 걸려 미완성이 되는 영화를 주위에서 종종 본다. 아무튼 영화는 처음 기획에서부터 극장에 상영할 때까지 우여곡절이 있다.
일반대중들은 '터미네이터 2'를 좋아하지만 영화 매니아들은 '터미네이터 1'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사실 '터미네이터 1'을 더 좋아한다. '터미네이터 1'은 다음호에 언급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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