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01, 2019

신의 도시(City of God, 2002)

신의 도시(City of God, 2002)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악마의 도시

이름은 신의 도시지만 현실은 신이 떠난 아이러니한 도시(City of God). 마약 딜러들이 독점한 신의 도시라 불리는 빈민가(Ghetto), 브라질 리오 데 자네리오(Rio de Janeiro, Brazil).
이 영화는 6,70년대 이 악마의 도시의 무대로 10대들의 범죄와 마약딜러의 보스에 관한 폴로 린스(Paulo Lins)의 충격적인 자전적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수작 범죄 드라마이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실제 리오 데 자네이로 안의 '시티 오브 갓'에 사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제작되었기 때문에 영화의 리얼함이 영화 전체에 배어있다.
리오 데 자네리오는 마약 딜러들이 이지역을 다스리고 통제한다. 경찰과 마약딜러들의 전쟁은 끊임없으며, 살인과 타락이 난무하는 중에도 일반 시민들은 오히려 마약 딜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마약딜러들은 빈민들에게 가끔 생활 필수품도 나눠 주고 장례식도 치러준다. 경찰들은 시민들에게 오히려 천대받는다.
경찰들이 한달내내 받는 월급보다 보통 마약 딜러들이 일주일 동안 버는 돈이 세배가 더 많다. 일부 경찰들은 부족한 월급을 충당하기 위해 마약딜러들에게 무기들을 밀매하기도 한다. 이렇게 무기고에서 나온 무기들은 도시전체에 깔린다. 5살짜리 어린이도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무법지대다.
마약딜러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거대한 그룹을 형성한다. 어린 꼬마부터 무기를 들고 임무를 수행한다. 어린 꼬마들은 경찰이 나타나면 화약 불꽃을 튀기는 신호로 마약딜러들에게 경찰의 출동을 알린다. 심지어 어린이들도 경찰과 대적하여 총질을 하기도 힌다. 감옥은 어린이들 범죄자들로 들끓는다.
가난이 가져온 비극은 사람들의 의식부터 바꿔놓는다. 젊은 여자들은 남자들을 보는 기준이 교육수준과 장래 희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큰 총을 가지고 있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큰총과 총을 많이 가진 남자들에게 미녀들이 더 많이 접근한다.
남미 나라들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쿠바의 영웅 체게바라(Che Guevara)의 이야기를 기초로 해 만든 영화,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 2004)’에서 두 젊은이는
모터싸이클 영국산 노튼(British-made Norton International)으로 남미를 여행한다.
남미 정치적 이념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몰리는 칠레 추까까마따 광산(Chuquicamata copper mine in in Chile)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알고있던 현실과 다른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노한다. 그 광산은 전세계에 관광의 명소로 알려져 있어나 내면을 보면 이런 고통이 숨겨져 있다.
의대생인 푸세는 여행중 라틴 아메리카 아마존 중부 최대의 나환자촌 산빠블로(San Pablo leprosarium)에 머무르게 된다. 이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고통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들을 보면서 삶의 진수를 깨닫는다.
‘내 이름은 쿠바(I Am Cuba, 1964)’ 이 영화는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의 몰락 전후 시기의 열광적 정치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러 다양한 쿠바의 어둡고 비참한 사회 실상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준다. 빈부의 격차, 관광객들에게 몸을 팔아 삶을 연명하는 여자, 갑부의 강매에 넘어가게 된 옥수수밭을 태우는 농부, 부패 경찰을 암살 하려는 청년, 혁명에 참가하는 대학생 등등. 흑백 영상은 칼러 보다도 더 선명하며 아름답다.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서 수탈의 섬, 쿠바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영웅 카스트로를 묘사한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혁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개인들의 삶을 점점 더 깊이 탐구하며 다양한 정치계급의 삶의 모습을 포착해 나간다.
필자의 다큐멘타리 ‘헤이티 노예 어린이들(Haitian Slave Chilren, 2001)’에서도 남미의 섬 헤이티의 실상을 고발한다. 중미 카리브해상 북부에 위치한 섬나라 헤이티는 흑인인국 95%, 문맹률 55%로의 가난하며 범죄와 실업률이 높은 나라로 이곳에서 실재 자행되고 있는 30만 어린이 노예가 참상을 당하고 있다. 대부분 실업자인 가난한 부모 밑에서 어려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아이들에 대한 보고서인 ’헤이티 노예 어린이들’은 영화제작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현지 100% 로케로 촬영을 감행했다.
필자는 처음으로 헤이티라는 낯선땅을 방문했다. 헤이티의 수도 Port-Au-Prince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에 살기를 느꼈다. 로스 엔젤레스에서 가져온 카메라 Cannon XL-1을 검은 쇼핑백에 넣어 감추었다. 만약 검사대에서 발칵이 날경우 카메라를 뺏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군인들에게 잡혀가 무슨일을 당할지 모른다. 타락한 헤이티 정부에서는 미디아를 통해 비참한 자기나라를 세상에 알리기 싫어서다.
무사히 검사대를 통과한후 공항을 나와 헤이티 거리를 밟았다. 무장한 군인들이 거리에 깔려있었다.
영화스탭진을 배웅나온 미니 밴을 탄 후 거리를 달리는데 차가 정지할때 마다 집없는 어린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손을 내밀었다. 옷은 넝마를 걸치고 모두 맨발이었다.
한때 노예 생활을 했던 어린이들을 보호해주는 고아원을 찾아가 그들을 인터뷰했다.
한 어린이는 부엌에서 일하다가 주인이 불에 달군 후라이 팬으로 머리를 짖이겨, 머리 반 이상이 화상을 입은 상처로 덮혀 있었고, 한 어린이는 배고파서 빵 한조각을 홈치다가 들켜 도끼로 손가락을 두개나 잘려 나갔으며, 또 한 어린이는 도망가다 잡히자 주인은 그 어린이를 땅 바닥에 뉘어놓고 트럭으로 발 위를 지나가 그 어린이의 발이 완전 불구가 됐다.
4일 동안 헤이티에 머물면서 카메라를 항상 쇼핑백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렌즈가 향한 쇼핑백 모서리에 구멍을 뚫어 촬영을 해야했다. 갱들이 들끓는 거리에서는 차 안에 숨어서 촬영했다.
헤이티의 빈부의 격차는 엄청났다. 부자들은 거대한 성같은 저택에 위성 TV 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부자들이 즐기는 카지노에 카메라를 숨겨 들어가 촬영도 했다.
섬 전체에 백인은 거의 없고 모두가 흑인이었다. 4일 동안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동양인은 필자 혼자였다.
이 다큐는 2002년 휴스턴 국제 영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고 자메이카 자메리칸 영화제에서 베스트 다큐멘타리 상을 수상했다.
우리들이 흔히 보고 지내는 한정된 현실을 넘어 은폐되어왔던 다른 세상의 불합리함을 볼 수 있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영화라는 미디아의 힘이다.

강영만 감독
http://www.youngmankang.com

Wednesday, May 31, 2006

분노의 주먹(Raging Bull, 1980)

분노의 주먹(Raging Bull, 1980)

감독: 마틴 스콜세지

연기에 대하여

드니로 어프로치란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스타일로 맡은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외부적 조건을 변화시키며 역할 속에 몰입하는 것이다. 연극계의 위대한 연기 이론인 메소드 연기법(Method) 과 비슷한 의미다.
로버트 드니로는 "완벽하게 내 역할에 빠져든다"는 철칙을 고수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정통 연기파 배우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와 <분노의 주먹>에 출연한 당시 그는 몸무게를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배역에 열중했다.
드니로는 늙은 라모타 역할을 하기위해 60파운드 몸무게를 늘렸으며, 같은 씬에서 조페시는 다이어트를 했다. 물론 드니로의 기록은 1987년 불후의 명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킷(Full Metal Jacket)’에서 자살하는 뚱보 사병 로렌스 역할을 했던 빈센트 드오노프리오에게 깨졌다. 그당시 빈센트는 그 역할을 위해 70파운드를 늘였다.
그외에도 미국 창녀 에일린 우오노스(Aileen Wuornos)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몬스터(Monster, 2003)’에서 샬리즈 쓰론(Charlize Theron)은 30파운드, 크리스티나 리치(Christina Ricci)는 10파운드를 늘였다.
메소드 연기법은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에 동화되어 감정을 느끼고 연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의 유명한 연극연출가 스타니 슬랍스키가 만들었고, 말론 브랜도같은 연극배우 출신의 명 영화배우들이 대부분 메소드 연기법을 익혔다.
엘리야 카잔 감독의 영화 ‘워터 프론트(On The Waterfront, 1954)’에서 말론 브란도가 보여준 연기는 메소드 연기의 진가를 보여준다. 깡패조직에 혈혈단신으로 대항에 노동자의 권익을 찾는 테리역의 말론 브란도는 육체의 고통뿐 아니라 불안과 희망 등 내면의 정서를 보여주는 연기를 통해 탁월한 메소드 연기를 해낸다.
엘리야 카잔은 1947년 동료들과 함께 액터스 스튜디오를 설립해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 등을 배출하면서 50년대 미국의 영화, 연극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카잔 감독의 ‘워터 프론트’에서 실용화시킨 메소드 연기는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와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에게도 영향을 주어 이들도 배우에게 영화촬영 도중 즉흥연기를 요청하는 등 메소드 연기는 누벨바그의 한 특징을 이룬다. 이렇게 엘리아 카잔 감독이 도입한 메소드 연기는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을 위시하여 폴 뉴먼,캐서린 헵번, 로버트 레드포드, 페이 더너웨이,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 니로, 알파치노 등으로 이어진다.
메소드 연기 방법론의 중심은 배우와 등장 인물간의 동화로 축약할 수 있을 것다. 배우는 자신이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며, 자신의 유사한 경험이나 과거에 대한 회상을 통하여 인물이 될 것을 요구받는다. 연기는 단순히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인이 그 배역과 동화되어 자연스럽게 표출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기론의 단점은 과잉동화의 경우 무대나 카메라 앞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배우의 연기나 행동이 돌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메소드 방법이 연출가들에게 거릴동리 될 수도 있다. 배우은
연출가가 독특한 비젼을 가지고 연출할때, 배우는 연출가와 타협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를 메소드 방법으로 예술가라고 내세우는 배우들과 의견이 불일치로 거림돌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일부 연출가는 독제자처럼 자기 스타일에 맞추기를 원할때 더욱더 문제점이 커질 수 있다.
미국 연기계의 3대거장 리 스트라스버그, 샌포드 마이즈너, 스텔라 애들러다.
그들은 배우들간의 교감과 상호작용 중심을 둔 자신만의 연기법을 개발하고 선택들은 행위를 창출해 낸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미리 정해 놓은 대사표현 방식에 갇히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행위가 대사표현 방식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대사는 선택으로부터 나온다. 샌포드 마이즈너(Sanford Meisner)는 그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였다. "어떤 신의 정서는 강과 같으며 대사는 그 강에 떠 있는 배들과 같다."
메소드 연기 방법은 대체적으로 많은 배우들에게 권장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와 반대되는 이론의 인물로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많이 거론된다. 그는 서사극을 발전시키며 동화보다는 이화나 거리두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은 변증법의 연극을 지향한다. 그가 죽음으로써 완성을 보지 못한 '서사극'은 서사적 연극, 혹은 변증법적 연극을 말한다. 기존의 연극이라는 환상을 채워보려는 현실의 좌절이나 불만을 브레히트는 서사성을 가미함으로써 연극에 놓여 있는 상황에 관객이 빠져들지 않도록 감정이입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서사극은 감정이입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깨우는 연극을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비(非)아리스토텔레스 연극이론이라고도 불리워 진다. 극단적으로 동화되지 않는 표현법이 서사극적이다.
브레히트는 서사극에서 어떤 인물의 행동을 보여주기는 하나 그 행동이나 상황을 낯설게 해서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추구한다. 어떤 사건이나 행동의 어느 한순간, 혹은 하나의 상황을 두드러지게 돋보이게 만드는 낯설게 하기의 수법은 우리가 일상적인 것으로 넘겨버리기 쉬운 사실에 대하여 한번 더 문제를 제기해 보는 방법이다. 낯설고 두드러져서 우리의 주위와 관심을 환기시키는 이 수법은 일상적인 사실을 역사적 대사건처럼 거리를 두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새롭게 보이게한다. 동시에 그와 반대로 위대한 인물을 가능한 평범한 사람의 차원으로 끌어내려서 우리의 이웃처럼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하는 작용도 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고정관념에 있던 사건이나 인물이나 상황이 더 눈에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그것들은 새로운 관점의 척도에 따라 평가되어진다.
브레히트는 시대에 대응할수 있는 객관적 인식의 각성과 비판의 예술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의 문학적 이념은 하나의 사조가 되면서 아직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브레히트는 일찍이 반체제성향이 강해서 그런 사상이 그의 작품 속에서도 드러나게 됩니다. 때문에 그의 연극을 보면 극예술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사회를 개혁하고자하는 정치적 의도를 볼 수 있다. 물론, 당시에 그런 작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브레히트의 작품은 극이 갖는 정치적 의도가 완전히 극예술의 형식으로 용해되어 표현되기 때문에 관객은 극예술을 즐기면서 정치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브레히트의 말을 빌면 ”즐기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즐기는” 연극이 그의 서사극인 것이다.
그때 관객은 “아! 지금 내가 영화를 보고 있구나!” 라고 놀라면서 영화에 몰입에서 깨어난다. 이것이 브레히트적 소외효과(소격효과)다. 즉 소외효과란 잘 연기하던 배우가 갑자기 카메라를 쳐다보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과 같은 걸 말한다.


Monday, February 13, 2006

스크린 쿼터 폐지가 죽인 천재감독 알렉한드로 조도로프스키

홀리 마운틴(The Holy Mountain, 1973)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스크린 쿼터 폐지가 죽인 천재감독 알렉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정부가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현행의 절반 수준인 73일로 축소하는 방안을 전격 발표했다(2006년 1월 26일). 미국측은 한미FTA 개시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와 소고기문제를 줄곧 거론해 왔다.
스크린 쿼터(screen quota)란, 자국영화 의무 상영 일수를 말한다.
스크린쿼터제는1927년 영국의회에서 영국내 모든 극장은 영국영화를 30%이상 반드시 상영해야한다는 규정을 담은 '영화 헌장'(Cinematograph Act)을 제정함으로서 영국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이후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일부 국가와 남아메리카·아시아 국가 일부가 이 제도를 시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영상진흥법)으로는 1966년 2차 영화법 개정 당시 명문화 되었으나 실제 시행은 1967년 1월 1일부터 이루어졌다. 한국의 영화진흥법은 모든 극장이 연중 5분의 2에 해당하는 1백46일 이상 한국 영화를 상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독과점한 상태에서 근래 영국 독일 멕시코 등은 10% 안팎의 자국 영화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스크린쿼터 유지로 우리는 지난 해 50%가 넘었다.
헐리우드 영화는 스타들의 개런티 비대와 터무니 없는 제작비의 증감으로 미국내 자체 수입(Domestic Sale) 만으로는 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해외마켓(International Sale)에서 수입을 충당해야한다.

헐리우드 영화가 왜 그렇게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는지 잠시 짚고 넘어가자. 영화 자체 순수 제작비는 영화 전체 예산에서 절반도 채 안된다. 그렇다면 절반이상을 넘는 제작비가 어디로 새어 나가는가?
우선 에이전트 시스템(Agent)이다. 헐리우드는 에이전트, 매니져, 변호사 들이 영화배우나 스탭진들보다 일은 적게 하고 이익금은 훨씬 더 많이 챙겨간다. 스타들도 그들에게 지불해야되는 엄청난 수익금 때문에 개런티 비용이 올라가는데 한 몫을 한다. 배우뿐만이 아니라 작가, 스탭들도 에니전트들이 따라다니며 수익금들을 챙긴다. 그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많으며 가족대대로 이어오는 경우가 많다.
몇년전에 헐리우드에서 제작자 몇명이 모여 인터넷으로 작가, 시나리오 선별, 배우와 스탭진을 고용하는 웹사이트를 개설한적이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에이전트들이 필요없고, 영화 제작비를 많이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으로 말하면 이익금들을 제일 많이 챙겨먹는 중간 상인들을 제외시킨다는 얘기다. 그러나 에이젼트들의 거센 반발과 위협으로 그 사이트는 문을 닫아야 했다.
두번째가 파인더스 비용(Finder’s Fee) 이다. 즉 소개비용이다. 영화제작을 위해서는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제작자가 직접 투자자와 협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투자자와 제작자 중간에 다리를 놔주는, 즉 소개를 시켜주는 브로커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투자 성사를 시켜주고 제작비 전체에서 5%에서 많게는 20%까지 파인더스 비를 챙겨간다. 이 시점에서 벌써부터 제작비는 삭둑 잘리어 나가는 셈이 된다.
세번째가 제작자들이 제작비를 빼돌리는 경우다. 영화제작비 어카운트 장부를 만드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영화 제작비가 쓰이는 곳마다 어떻게 딜을 하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비용의 액수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필자의 영화 ‘라스트 이브(The Last Eve)’에서 베버리 힐스 저택에서 촬영한 씬이 있다. 그 로케이션은 보통 영화사들에게 하루 촬영 대여비가 5만 달러 이다. 필자는 친구의 소개로 집 주인 마크 윌버를 만나 필자의 저예산영화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마크는 촬영을 허용했으며, 공짜로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내용이 필자가 2004년 11월 말 KBS TV 1에 출연한 한민족 리포트 “서산촌놈 강영만, 헐리우드에 가다.”에 나온다.
제작자의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비용의 삭감과, 제작자의 실수로 비용이 증감할 수 있다. 그런 조정 가능성을 이용하여 제작비의 많은 양을 빼돌리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아는 제작자 몇명이 투자받은 제작비를 빼돌려 집을 산 것이 투자자에게 발칵되어 소송에 휘말린 것을 봤다.
스타들과 제작자들이 거액을 가져가는 반면에, 일부 스탭진들은 형편없는 월급을 받는다. PA (Production Assistant) 라는 직급이 있다. PA들은 세트장에서 제일 밑 바닥일을 한다. 그들은 제일 힘든 일을 하며 일당 $50 - $100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네번째 불 필요한 직원들이다. 예산이 많은 헐리우드 영화 세트장에 가보면 꼴불견이다. 막상 일하는 스탭진들은 얼마되지 않는다. 나머지 스탭진들은 세트장에서 빈둥빈둥 자리만 채우며 시간을 때운다. 그들은 할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 배우들과 농담이나 찌껄인다. 그래도 그들은 꼬박꼬박 일당이 나온다. 예산이 많으니 무조건 스탭명부에 나와있는 직책들은 일단 다 고용한다. 게다가 마케딩 부서에서 일하는 사무직원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모두 월급이 나간다. 물론 모두 투자받은 제작비에서 말이다.

헐리우드 영화들은 제작비의 비대로 일년에 800 - 1000편을 만들어 낸다. 200편 이외에는 모두 쓰레기다. 그 쓰레기들로 돈을 거두어 들여야 다음 영화를 만들수 있기 때문에 해외시장을 독식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해외시장을 독식할까.
끼워팔기 형식이다. 팻키지 딜(Package Deal)이라고 한다. 일년에 헐리우드 흥행작들은 몇편이 되지 않는다. 헐리우드는 직배사들을 통해 극장주들에게 흥행작을 주는 대신 10편정도 쓰레기들을 끼워 판다.
그럴경우 헐리우드 영화들은 물량공세로 극장의 상영일수를 잠식하게 된다. 일년내내 할리우드 영화들만 상영해도 일수가 부족할 정도로 헐리우드 영화의 물량은 대단하다. 제작편수가 적은 한국영화는 낄 수가 없게 된다. 한국영화 중 흥행이 확실한 영화만 연장되고 나머지 영화들은 일주일만에 극장에서 내려야한다. 입소문을 통해 서서히 진행되는 흥행은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금방 극장에서 내릴 경우 “왕의 남자”같은 결과는 다시는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왕의 남자” 처럼 마케팅 비용의 부족으로 적은 극장수를 잡아서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퍼지는 데까지는 최소 몇주 시간이 필요하다. 그나마 146일이라는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기 때문에 100일을 흥행 가능성 높은 영화로 채우고 난 후, 끄트머리에 겨우 매달려 개봉한 영화라며 이준익 감독은 스크린쿼터의 영향이 컸음을 주장했다.
진정 한국영화를 살리는 길은 한국영화들 자체에도 스크린 쿼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할리우드에 대항하여 한국영화가 40%를 스크린 쿼터를 요구하듯이 한국 메이져 영화들에 대해, 예술영화, 독립영화들의 40%의 스크린 쿼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 영화들도 요즘은 독식이다. 어떻게 보면 헐리우드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몇몇 안되는 거대 계열사들이 극장체인을 독식하기 때문에 계속 조폭 영화, 흥행위주의 영화들이 계속 양상된다. 제작자들도 힘들게 작품성있는 영화을 만들는 것 보다 쉽게 흥행성 위주로 영화를 만들것이다. 그럴경우 한국 영화는 발전을 후퇴되고 홍콩 같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스크린 쿼터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폴란드나 멕시코 같은 영화산업으로 치닫을 것이다.
폴란드의 경우 80년대 1년에 70~80편 제작되던 자국의 영화는 현재 10 여편 조차 되지 않는다.
멕시코도 예전엔 100편 이상 상당히 많은 자국영화를 만드는 국가였고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같은 유명한 감독도 많이 배출하였으나 지금은 10편 미만으로 영화제작 산업이라는 것이 이젠 아예 실종되어 버렸다.
제도라는 굴레 때문에 천재 아티스트가 죽는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같은 천재 감독의 작품을 접한다는 것은 문화생활에서 행운이다. 필자가 그의 영화들을 처음 보았을때 충격과 함께,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사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다람쥐 체바퀴속에서 산다. 매일 같은 시간, 직장, 장소, 사람들….. 그런 삶에서 시각이나 관념도 고정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나마 문화생활을 통해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며, 간접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항상 보는 진부한 내용의 영화들은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준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특이한 영화들은 잠자고 있는 뇌에 충격이나 경종을 울린다.
그의 영화 “엘 토포(El Topo, 1970)” 전세계 영화팬의 컬트 클레식이 되었다. “홀리 마운틴(The Holy Mountain, 1973)”, “섄타 섕그레(Santa Sangre, 1989)”등이 전세계 매니아들에게 유명하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이외에도 헐리우드에 한이 많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둔(Dune, 1984 )’ 영화도 원래는 도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헐리우드의 배신으로 결국 데이빗 린치 감독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만들었더라면 아마 더 훌륭한 오리지널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Fando y Lis, 1968)가 멕시코 극장에 상영될 때, 그 도시 깡패 보스 한명이 그 영화를 너무 혐오하여 조도로프스키 감독을 죽이려고 까지 마음 먹었다. 그럴정도로 관객의 신경을 건드린 영화였다. 그 깡패에게 위스키 선물을 보내 둘이 친구가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런 감독의 영화들도 한번은 볼 기회를 가지라고 필자는 권하고 싶다. 거부 반응이 올 수 있어도 한번 이런 세계도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도 이젠 더 이상 멕시코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는 벌써 노장이 됐다. 스트린 쿼터 폐지 제도의 희생물이다. 멕시코에 계속 스크린 쿼터가 있었더라도 이런 천재감독의 작품이 계속 더 나왔을 것이다.
우리 나라도 이런 절차를 밟지 않기를, 관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영화인의 한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강영만 감독 홈페이지
http://www.youngmankang.com

Friday, January 27, 2006

37. 아이 로봇(I, Robot, 2004)

37. 아이 로봇(I, Robot, 2004)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

만약 로봇이 꿈을 꾼다면.

아무리 고도로 발달된 로봇일지라도 로봇은 기계에 불과하다. 정말 그럴까? ‘아이 로봇’을 보고나면 이런 명제들이 궁금증으로 떠오른다. 암울한 인간의 미래에 로봇은 인간의 지각능력만큼 계속 발전한다. 바로 인간이 신의 경지에 다다르고 싶듯이 말이다. 구약성경에서 구약시대 인간들은 신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다. 그들이 생각했던 신은 하늘 높은 곳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바벨탑을 계속 쌓아 올렸다. 그러나 신은 그들이 괘씸하게 여겨 그들에게 각기 다른 언어들을 내렸다. 그 후부터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이 통하지 않아 바벨탑을 더 이상 쌓을 수 없게 된다.
만약 로봇이 꿈이 있다면 인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2001)’ 에서 꼬마 로봇 데이빗(헤일리 조엘 오스멘트)은 인간 부모에게 양자가 되어 인간 가정에 들어온다. 그는 로봇이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인간의 정을 느끼고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아이 로봇’ 에서도 로봇들이 미쳐 쿠데타를 일으켜 인간을 지배 하려 하나 실패로 끝난다.
로봇을 지배하는 것은 컴퓨터 인공지능 메인 컨트롤 마더 보드이다. 바로 그 컨트롤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뇌에서 사고하는 인간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에서 로봇은 인간에게 복종하기 위해 3개 조항이 있다. 1조는 ‘로봇은 절대 인간을 해칠 수 없다.’ 2조는 ‘1조의 위반되는 경우 외에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된다.’ 3조는 ‘1조와 2조에 위반되는 경우 외에 로봇은 스스로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로봇들은 3조항을 역이용해 미쳐버리고 반란을 일으킨다. 모든 능력에서 월등한 로봇들 앞에 인간들은 무력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모든 로봇이 악하게 변하지는 않는다. 수 많은 로봇 중에 하나의 로봇 ‘소니’ 만이 선한 로봇으로 끝까지 인간을 지킨다. 그는 인간처럼 윙크하며 인간 감정까지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
만약 로봇이 꿈을 꾼다면… 그러나 이 영화에선 ‘소니’는 꿈을 꾼다. 로봇 ‘소니’가 꾼 꿈은 바로 다가오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하며 그대로 실현된다. 즉 인간을 구하고 로봇을 평정시키는 것이 바로 본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로봇 ‘소니’의 꿈과 인간의 꿈은 비교가 된다. 인간이 꾸는 꿈은 미래에 그대로 적중하는 것이 드물다. 물론 개중에는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 적중하는 경우도 있지만 100% 그대로 꿈에서 본대로 똑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희망으로도 표현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100%를 성취하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꿈이다. 그러나 로봇 ‘소니’의 꿈은 영상 그대로 정확히 시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로봇이 꾸는 꿈은 인공지능 데이터 베이스에 의한 기억장치에 위한 반응이 아닐까?
그렇다면 만약 인간과 똑같은 두뇌를 개발하여 로봇에게 이식한다면 인간과 똑같은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렇다고 우리는 그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원작자 아이작 아지모프의 단편 작들을 보면 모두 로봇과 인간의 정신 세계의 경계와 정체성에 대한 많은 의문들을 제시한다.

Sunday, March 13, 2005

36.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2004년 8월 14일

36.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미래는 어둡지만 자동차는 멋지다.

미국 박스오피스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블록 바스터, 다음주에 언급할 윌 스미스 주연 ‘아이 로봇(I, Robot, 2004)’를 말하기 전에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안 집고 넘어갈 수가 없다. 첫째로 두 영화의 원작가들이 공상과학소설의 쌍벽을 이루는 대가들이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은 필립 케이 딕으로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 토탈리콜(Total Recall, 1990), 페이첵(Paycheck, 2003)’ 등이 있다.
‘아이 로봇’의 원작자 아이작 아지모프의 스토리들은 ‘스타트렉’ 등 20여편 TV 영화로 만들어 졌으며 영화로는 ‘바이센트럴 맨(Bicentennial man, 1999)’과 ‘나이트 폴(Night Fall, 2000)’이 있다.
이 두작가의 작품들의 공통점은 지구의 미래를 아주 어둡고 암울하게 표현한데 있다. 그들의 미래에 대한 시각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둘째로 두 영화에 출현하는 두 종류의 자동차 디자인 역시 쌍벽을 이룬다.
미래의 인간사회는 암울하지만 상대적으로 영화에서 보는 미래의 세트나 프로덕트 들은 화려하다. 그중에서 미래 자동차들은 정말 멋지다. 특히 디자인이 멋지다. 자동차의 디자인은 인간의 미래를 알 수 있는 표상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에서 출현하는 미래차들은 모두 ‘렉서스’이다. 근육 모양으로 뒤덮힌 형태의 디자인, 공격적인 선, 예상할 수 없는 비율, 첫눈에 앞 뒤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자동차의 디자인은 보기 좋으나 실용성에 대한 것은 의문이다. 훌륭한 디자인은 보기도 멋있어야 되지만 테크놀로지와 어울려 실용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차들을 타보지 않는이상 실용성에 대한 것은 말하기 힘들다. 그리고 영화이기 때문에 일단 비주얼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렉서스 SUV를 타고 다닌다. 렉서스 SUV는 할리우드에서 유명인사들에게 인기가 있는 차들중의 하나다. 교통 경찰들도 이차에게는 티켓도 잘 떼지 않는다. 렉서스의 매력때문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에 렉서스 디자인을 선택한것 같다.
렉서스는 이 영화뿐만이 아니라 프로모션 캠페인으로 내쇼널 TV 광고, 스크린 프로그램, 극장 디스플레이, 온라인 광고, 자동차 쇼, 전시, 딜러쉽 범위 확장까지 다양하게 사업적으로 연계시킨다.
그렇지만 ‘아이 로봇’에서 델 스프너(윌 스미스)가 타는 차는 ‘아우디 RSQ 스포츠 카’이다. 렉서스보다 디자인이 더 세련되다는 평이다. 이 자동차들은 모두 PPL(Product Placement)이다.
렉서스는 5백만불을 ‘마이너리티 리포트’ PPL에 쏟아 붇는다. 그외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갭, 기네스, 노키아, 리북 등 총 PPL은 2천 5백만불에 달한다. 이만큼 영화에서 PPL의 위상은 엄청나게 작용한다.
그러나 영화에 PPL이 너무 과다하면 영화적인 요소들을 해칠 우려가 있다. 스토리와 흐름에 맞는 PPL만이 환영받는다. 한국영화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같은 경우 PPL의 과다사용으로 영화의 흐름을 캐 아쉬움을 남긴다.

Thursday, February 24, 2005

35. 킹 아서(King Arthur, 2004)

2004년 8월 7일
35. 킹 아서(King Arthur, 2004)

감독: 안토인 푸쿠아
전설에서 역사로 살아나는 아서왕

6세기 웰쉬(Welsh)의 시인 탤라이신의 ‘아서왕’에 대한 시다.
‘Let me sing with inspiration
Of the man born of two nations,
Of Rome and of Britain…
… Arthur the blessed
Led his assault from the Great Wall…’
이 시에서처럼 어서왕(클라이브 오웬)은 로마와 영국 이중국적인으로 태어나 로마의 용병장에서 자유의 뿌리를 찾는 영국인으로 바뀌면서 그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 영화는 전설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있을법한 역사적 사건들을 토대로 만들었다.
존 부어맨 감독의 엑스칼리버(Excalibur, 1981)’에서 선과 악을 넘나들었던 마법사 ‘멀린’은 이 영화에선 전설의 마법사가 아니라 영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얼굴에 파란 문신을 바른 게릴라 와즈부족의 추장으로 나온다. 얼굴에 푸른색을 칠하는 것은 ‘브레이브하트(Braveheart,1995)’에서 윌리엄 웰레스(멜 깁슨)과 비슷하다.
전설에서 처럼 아서왕이 바위에 꽂힌 엑스칼리버를 멋지게 뽑는 장면도 없다. 전설에서 존재했던 원탁은 그 위상을 잃고, 이 영화에서 고집센 이교도 원탁의 기사들은 전설상의 성배를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기네비어(키라 나이틀리) 왕비를 사이에 두고 아서왕과 기사 랜슬롯과의 전설적 삼각관계대신, 이 영화에선 기사 랜슬롯은 기네비어에게 마음에 사무치는 눈길을 몇번 줄 뿐이다. 추장 멀린의 딸 기네비아 역시 단지 사랑에만 머물지 않고 와즈부족의 여전사로 치열한 전투를 한다.
리들리 스캇감독의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0)’를 쓴 데이빗 프렌조니가 역시 시나리오를 썼으며 맥시무스(러셀 크로)가 처음에는 로마에 충성하다가 나중에는 로마 권력에 대항하는 내용은 시나리오 구성상 비슷하다.
사실성에 초점을 두고 실제적인 진짜 영웅터치를 주기 위해서 아서왕 캐스트를 거친 인상에 말수가 적은 묵직한 영국배우 클라이브 오웬이 발탁됐다. 볼프강 피터슨 감독의 ‘토로이(Troy, 2004)’에서 아킬레스 역을 맡았던 여성팬들의 우상 금발의 미남배우 브레드 피트와는 대조가 된다.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하여서인지 영화의 장면은 전반적으로 거칠다.
기울어져가는 로마인들이 영국에서 후퇴하는 틈을타서 색슨족이 영국을 정복하려고 할 때 아서왕과 기사들은 영국의 원주민 와즈족들과 합세하여 그들을 물리치고 영국의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아서왕은 즉위하고 기네비어는 왕비가 된다.
색슨족의 리더역을 맡은 빌런 캐릭터 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스웨덴 버전 크리스토퍼 월큰을 연상케 한다.
전설상의 삼각관계에서 벗어나 이 영화에서 기사 랜슬롯은 기네비어에게 마음에 추파를 몇번 던질 뿐 아무런 기승전결이 없이 마지막 전쟁터에서 허무하게 죽는다.
기네비아도 단지 전투장면에서 얼굴표정 크로즈업과 섹시한 몸매만 과시할 뿐 캐릭터가 애매모호한게 흠이다.

Tuesday, February 22, 2005

34.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 (Napoleon Dynamite, 2004)

2004년 7월 31일

34.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 (Napoleon Dynamite, 2004)

감독: 재러드 헤스

바보도 영웅이 되는 시대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 는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배출된 독립 저예산 작품으로 스튜디오 영화사에 픽업되어 성공한 영화중의 하나다. 올해에 들어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 이외에 성공한 저예산 작품으론 아메리칸 정크 푸드 햄버거를 실랄하게 비판한 다큐멘터리 ‘수퍼사이즈 미(Super Size Me, 2004)’가 있다.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는 변명답지 않은 바보에 대한 영화다. 괴짜는 ‘Geek’ 이고 ‘Nerd’는 바보 멍청이다.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존 헤더)은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 우선 나폴레옹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무선 외모에서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예로 전쟁광 부시를 집요하게 비판한 ‘화씨 9/11(Fahrenheit 9/11, 2004)’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크게 성공한 마이클 모어 감독은 학창시절 뚱뚱하고 못난 외모 때문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멀대같이 큰 키에 깡말랐다. 머리는 산발한 곱슬머리로 싼 가발처럼 보인다. 커다랗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으며 무표정한 얼굴에 입은 항상 헤하고 벌어져 있다.
이 영화에서 나폴레옹은 현실세계와 판타시 세계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는 우물쭈물 거리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며, 말할때는 언제나 자기 방어적인 소극적인 쑥 들어가는 말투를 쓴다. 고등학교에서 완전 바보로 찍혀 조롱당한다. 물어보는 여자마다 거절을 당해 댄스파티에 함께 갈 여자도 없다. 그러나 종국에는 학회장 선거운동 프로모션에서 요상한 댄스시범을 멋지게 보여 최고의 인기를 얻게된다.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며 학창시절을 회상케 하는 영화다.
오하이오 프리스톤 출신으로 24살로 감독 데뷰한 재러드 헤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바보가 된 순간이 있다. 심지어 멋장이도 마찬가지다.’
탐 행크스가 주연한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에서 주인공은 본인의 바보성향 때문에 자기자신이 느끼지도 못한 체 그의 삶의 여정에서 미국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바보 스타는 나폴레옹외에 윌리엄 헝(William Hung)이라는 중국계 미국인이 있다. 그는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쇼에 출연하여 노래에 재주가 전혀없다는 이유로 심사위원들에게 조롱을 받으며 예선 탈락한다. 그 순간 그 바보의 변병과 멍한 표정은 프로그래머의 눈에 들어 바보 윌리엄 헝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다. 윌리엄 헝은 마케팅 툴로 변신하여 일약 스타로 둔갑한다.
온라인 스토어와 로컬 토이 스토어에서 GeekMan 토이 장난감 캐릭터를 살수있다. GeekMan은 마르고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다. 검은 뿔테안경을 끼고 왼속에는 커피 컵이 들려있다. 허리춤에는 전자계산기가 달려있고 티 셔츠 앞 호주머니에는 연필과 볼펜이 꽂혀있다.
컴퓨터 Geek은 현대에 가면 갈수록 옛날의 Geek의 단순 의미가 아니다. 그들은 온라인 상에서 대단한 파우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부 ’또라이’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 또라이들은 종종 훌륭한 아티스트로 인정받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