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도시(City of God, 2002)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악마의 도시
이름은 신의 도시지만 현실은 신이 떠난 아이러니한 도시(City of God). 마약 딜러들이 독점한 신의 도시라 불리는 빈민가(Ghetto), 브라질 리오 데 자네리오(Rio de Janeiro, Brazil).
이 영화는 6,70년대 이 악마의 도시의 무대로 10대들의 범죄와 마약딜러의 보스에 관한 폴로 린스(Paulo Lins)의 충격적인 자전적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수작 범죄 드라마이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실제 리오 데 자네이로 안의 '시티 오브 갓'에 사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제작되었기 때문에 영화의 리얼함이 영화 전체에 배어있다.
리오 데 자네리오는 마약 딜러들이 이지역을 다스리고 통제한다. 경찰과 마약딜러들의 전쟁은 끊임없으며, 살인과 타락이 난무하는 중에도 일반 시민들은 오히려 마약 딜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마약딜러들은 빈민들에게 가끔 생활 필수품도 나눠 주고 장례식도 치러준다. 경찰들은 시민들에게 오히려 천대받는다.
경찰들이 한달내내 받는 월급보다 보통 마약 딜러들이 일주일 동안 버는 돈이 세배가 더 많다. 일부 경찰들은 부족한 월급을 충당하기 위해 마약딜러들에게 무기들을 밀매하기도 한다. 이렇게 무기고에서 나온 무기들은 도시전체에 깔린다. 5살짜리 어린이도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무법지대다.
마약딜러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거대한 그룹을 형성한다. 어린 꼬마부터 무기를 들고 임무를 수행한다. 어린 꼬마들은 경찰이 나타나면 화약 불꽃을 튀기는 신호로 마약딜러들에게 경찰의 출동을 알린다. 심지어 어린이들도 경찰과 대적하여 총질을 하기도 힌다. 감옥은 어린이들 범죄자들로 들끓는다.
가난이 가져온 비극은 사람들의 의식부터 바꿔놓는다. 젊은 여자들은 남자들을 보는 기준이 교육수준과 장래 희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큰 총을 가지고 있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큰총과 총을 많이 가진 남자들에게 미녀들이 더 많이 접근한다.
남미 나라들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쿠바의 영웅 체게바라(Che Guevara)의 이야기를 기초로 해 만든 영화,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 2004)’에서 두 젊은이는
모터싸이클 영국산 노튼(British-made Norton International)으로 남미를 여행한다.
남미 정치적 이념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몰리는 칠레 추까까마따 광산(Chuquicamata copper mine in in Chile)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알고있던 현실과 다른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노한다. 그 광산은 전세계에 관광의 명소로 알려져 있어나 내면을 보면 이런 고통이 숨겨져 있다.
의대생인 푸세는 여행중 라틴 아메리카 아마존 중부 최대의 나환자촌 산빠블로(San Pablo leprosarium)에 머무르게 된다. 이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고통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들을 보면서 삶의 진수를 깨닫는다.
‘내 이름은 쿠바(I Am Cuba, 1964)’ 이 영화는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의 몰락 전후 시기의 열광적 정치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러 다양한 쿠바의 어둡고 비참한 사회 실상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준다. 빈부의 격차, 관광객들에게 몸을 팔아 삶을 연명하는 여자, 갑부의 강매에 넘어가게 된 옥수수밭을 태우는 농부, 부패 경찰을 암살 하려는 청년, 혁명에 참가하는 대학생 등등. 흑백 영상은 칼러 보다도 더 선명하며 아름답다.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서 수탈의 섬, 쿠바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영웅 카스트로를 묘사한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혁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개인들의 삶을 점점 더 깊이 탐구하며 다양한 정치계급의 삶의 모습을 포착해 나간다.
필자의 다큐멘타리 ‘헤이티 노예 어린이들(Haitian Slave Chilren, 2001)’에서도 남미의 섬 헤이티의 실상을 고발한다. 중미 카리브해상 북부에 위치한 섬나라 헤이티는 흑인인국 95%, 문맹률 55%로의 가난하며 범죄와 실업률이 높은 나라로 이곳에서 실재 자행되고 있는 30만 어린이 노예가 참상을 당하고 있다. 대부분 실업자인 가난한 부모 밑에서 어려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아이들에 대한 보고서인 ’헤이티 노예 어린이들’은 영화제작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현지 100% 로케로 촬영을 감행했다.
필자는 처음으로 헤이티라는 낯선땅을 방문했다. 헤이티의 수도 Port-Au-Prince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에 살기를 느꼈다. 로스 엔젤레스에서 가져온 카메라 Cannon XL-1을 검은 쇼핑백에 넣어 감추었다. 만약 검사대에서 발칵이 날경우 카메라를 뺏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군인들에게 잡혀가 무슨일을 당할지 모른다. 타락한 헤이티 정부에서는 미디아를 통해 비참한 자기나라를 세상에 알리기 싫어서다.
무사히 검사대를 통과한후 공항을 나와 헤이티 거리를 밟았다. 무장한 군인들이 거리에 깔려있었다.
영화스탭진을 배웅나온 미니 밴을 탄 후 거리를 달리는데 차가 정지할때 마다 집없는 어린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손을 내밀었다. 옷은 넝마를 걸치고 모두 맨발이었다.
한때 노예 생활을 했던 어린이들을 보호해주는 고아원을 찾아가 그들을 인터뷰했다.
한 어린이는 부엌에서 일하다가 주인이 불에 달군 후라이 팬으로 머리를 짖이겨, 머리 반 이상이 화상을 입은 상처로 덮혀 있었고, 한 어린이는 배고파서 빵 한조각을 홈치다가 들켜 도끼로 손가락을 두개나 잘려 나갔으며, 또 한 어린이는 도망가다 잡히자 주인은 그 어린이를 땅 바닥에 뉘어놓고 트럭으로 발 위를 지나가 그 어린이의 발이 완전 불구가 됐다.
4일 동안 헤이티에 머물면서 카메라를 항상 쇼핑백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렌즈가 향한 쇼핑백 모서리에 구멍을 뚫어 촬영을 해야했다. 갱들이 들끓는 거리에서는 차 안에 숨어서 촬영했다.
헤이티의 빈부의 격차는 엄청났다. 부자들은 거대한 성같은 저택에 위성 TV 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부자들이 즐기는 카지노에 카메라를 숨겨 들어가 촬영도 했다.
섬 전체에 백인은 거의 없고 모두가 흑인이었다. 4일 동안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동양인은 필자 혼자였다.
이 다큐는 2002년 휴스턴 국제 영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고 자메이카 자메리칸 영화제에서 베스트 다큐멘타리 상을 수상했다.
우리들이 흔히 보고 지내는 한정된 현실을 넘어 은폐되어왔던 다른 세상의 불합리함을 볼 수 있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영화라는 미디아의 힘이다.
강영만 감독
http://www.youngmank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