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마운틴(The Holy Mountain, 1973)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스크린 쿼터 폐지가 죽인 천재감독 알렉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정부가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현행의 절반 수준인 73일로 축소하는 방안을 전격 발표했다(2006년 1월 26일). 미국측은 한미FTA 개시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와 소고기문제를 줄곧 거론해 왔다.
스크린 쿼터(screen quota)란, 자국영화 의무 상영 일수를 말한다.
스크린쿼터제는1927년 영국의회에서 영국내 모든 극장은 영국영화를 30%이상 반드시 상영해야한다는 규정을 담은 '영화 헌장'(Cinematograph Act)을 제정함으로서 영국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이후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일부 국가와 남아메리카·아시아 국가 일부가 이 제도를 시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영상진흥법)으로는 1966년 2차 영화법 개정 당시 명문화 되었으나 실제 시행은 1967년 1월 1일부터 이루어졌다. 한국의 영화진흥법은 모든 극장이 연중 5분의 2에 해당하는 1백46일 이상 한국 영화를 상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독과점한 상태에서 근래 영국 독일 멕시코 등은 10% 안팎의 자국 영화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스크린쿼터 유지로 우리는 지난 해 50%가 넘었다.
헐리우드 영화는 스타들의 개런티 비대와 터무니 없는 제작비의 증감으로 미국내 자체 수입(Domestic Sale) 만으로는 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해외마켓(International Sale)에서 수입을 충당해야한다.
헐리우드 영화가 왜 그렇게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는지 잠시 짚고 넘어가자. 영화 자체 순수 제작비는 영화 전체 예산에서 절반도 채 안된다. 그렇다면 절반이상을 넘는 제작비가 어디로 새어 나가는가?
우선 에이전트 시스템(Agent)이다. 헐리우드는 에이전트, 매니져, 변호사 들이 영화배우나 스탭진들보다 일은 적게 하고 이익금은 훨씬 더 많이 챙겨간다. 스타들도 그들에게 지불해야되는 엄청난 수익금 때문에 개런티 비용이 올라가는데 한 몫을 한다. 배우뿐만이 아니라 작가, 스탭들도 에니전트들이 따라다니며 수익금들을 챙긴다. 그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많으며 가족대대로 이어오는 경우가 많다.
몇년전에 헐리우드에서 제작자 몇명이 모여 인터넷으로 작가, 시나리오 선별, 배우와 스탭진을 고용하는 웹사이트를 개설한적이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에이전트들이 필요없고, 영화 제작비를 많이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으로 말하면 이익금들을 제일 많이 챙겨먹는 중간 상인들을 제외시킨다는 얘기다. 그러나 에이젼트들의 거센 반발과 위협으로 그 사이트는 문을 닫아야 했다.
두번째가 파인더스 비용(Finder’s Fee) 이다. 즉 소개비용이다. 영화제작을 위해서는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제작자가 직접 투자자와 협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투자자와 제작자 중간에 다리를 놔주는, 즉 소개를 시켜주는 브로커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투자 성사를 시켜주고 제작비 전체에서 5%에서 많게는 20%까지 파인더스 비를 챙겨간다. 이 시점에서 벌써부터 제작비는 삭둑 잘리어 나가는 셈이 된다.
세번째가 제작자들이 제작비를 빼돌리는 경우다. 영화제작비 어카운트 장부를 만드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영화 제작비가 쓰이는 곳마다 어떻게 딜을 하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비용의 액수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필자의 영화 ‘라스트 이브(The Last Eve)’에서 베버리 힐스 저택에서 촬영한 씬이 있다. 그 로케이션은 보통 영화사들에게 하루 촬영 대여비가 5만 달러 이다. 필자는 친구의 소개로 집 주인 마크 윌버를 만나 필자의 저예산영화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마크는 촬영을 허용했으며, 공짜로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내용이 필자가 2004년 11월 말 KBS TV 1에 출연한 한민족 리포트 “서산촌놈 강영만, 헐리우드에 가다.”에 나온다.
제작자의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비용의 삭감과, 제작자의 실수로 비용이 증감할 수 있다. 그런 조정 가능성을 이용하여 제작비의 많은 양을 빼돌리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아는 제작자 몇명이 투자받은 제작비를 빼돌려 집을 산 것이 투자자에게 발칵되어 소송에 휘말린 것을 봤다.
스타들과 제작자들이 거액을 가져가는 반면에, 일부 스탭진들은 형편없는 월급을 받는다. PA (Production Assistant) 라는 직급이 있다. PA들은 세트장에서 제일 밑 바닥일을 한다. 그들은 제일 힘든 일을 하며 일당 $50 - $100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네번째 불 필요한 직원들이다. 예산이 많은 헐리우드 영화 세트장에 가보면 꼴불견이다. 막상 일하는 스탭진들은 얼마되지 않는다. 나머지 스탭진들은 세트장에서 빈둥빈둥 자리만 채우며 시간을 때운다. 그들은 할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 배우들과 농담이나 찌껄인다. 그래도 그들은 꼬박꼬박 일당이 나온다. 예산이 많으니 무조건 스탭명부에 나와있는 직책들은 일단 다 고용한다. 게다가 마케딩 부서에서 일하는 사무직원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모두 월급이 나간다. 물론 모두 투자받은 제작비에서 말이다.
헐리우드 영화들은 제작비의 비대로 일년에 800 - 1000편을 만들어 낸다. 200편 이외에는 모두 쓰레기다. 그 쓰레기들로 돈을 거두어 들여야 다음 영화를 만들수 있기 때문에 해외시장을 독식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해외시장을 독식할까.
끼워팔기 형식이다. 팻키지 딜(Package Deal)이라고 한다. 일년에 헐리우드 흥행작들은 몇편이 되지 않는다. 헐리우드는 직배사들을 통해 극장주들에게 흥행작을 주는 대신 10편정도 쓰레기들을 끼워 판다.
그럴경우 헐리우드 영화들은 물량공세로 극장의 상영일수를 잠식하게 된다. 일년내내 할리우드 영화들만 상영해도 일수가 부족할 정도로 헐리우드 영화의 물량은 대단하다. 제작편수가 적은 한국영화는 낄 수가 없게 된다. 한국영화 중 흥행이 확실한 영화만 연장되고 나머지 영화들은 일주일만에 극장에서 내려야한다. 입소문을 통해 서서히 진행되는 흥행은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금방 극장에서 내릴 경우 “왕의 남자”같은 결과는 다시는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왕의 남자” 처럼 마케팅 비용의 부족으로 적은 극장수를 잡아서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퍼지는 데까지는 최소 몇주 시간이 필요하다. 그나마 146일이라는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기 때문에 100일을 흥행 가능성 높은 영화로 채우고 난 후, 끄트머리에 겨우 매달려 개봉한 영화라며 이준익 감독은 스크린쿼터의 영향이 컸음을 주장했다.
진정 한국영화를 살리는 길은 한국영화들 자체에도 스크린 쿼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할리우드에 대항하여 한국영화가 40%를 스크린 쿼터를 요구하듯이 한국 메이져 영화들에 대해, 예술영화, 독립영화들의 40%의 스크린 쿼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 영화들도 요즘은 독식이다. 어떻게 보면 헐리우드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몇몇 안되는 거대 계열사들이 극장체인을 독식하기 때문에 계속 조폭 영화, 흥행위주의 영화들이 계속 양상된다. 제작자들도 힘들게 작품성있는 영화을 만들는 것 보다 쉽게 흥행성 위주로 영화를 만들것이다. 그럴경우 한국 영화는 발전을 후퇴되고 홍콩 같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스크린 쿼터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폴란드나 멕시코 같은 영화산업으로 치닫을 것이다.
폴란드의 경우 80년대 1년에 70~80편 제작되던 자국의 영화는 현재 10 여편 조차 되지 않는다.
멕시코도 예전엔 100편 이상 상당히 많은 자국영화를 만드는 국가였고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같은 유명한 감독도 많이 배출하였으나 지금은 10편 미만으로 영화제작 산업이라는 것이 이젠 아예 실종되어 버렸다.
제도라는 굴레 때문에 천재 아티스트가 죽는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같은 천재 감독의 작품을 접한다는 것은 문화생활에서 행운이다. 필자가 그의 영화들을 처음 보았을때 충격과 함께,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사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다람쥐 체바퀴속에서 산다. 매일 같은 시간, 직장, 장소, 사람들….. 그런 삶에서 시각이나 관념도 고정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나마 문화생활을 통해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며, 간접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항상 보는 진부한 내용의 영화들은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준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특이한 영화들은 잠자고 있는 뇌에 충격이나 경종을 울린다.
그의 영화 “엘 토포(El Topo, 1970)” 전세계 영화팬의 컬트 클레식이 되었다. “홀리 마운틴(The Holy Mountain, 1973)”, “섄타 섕그레(Santa Sangre, 1989)”등이 전세계 매니아들에게 유명하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이외에도 헐리우드에 한이 많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둔(Dune, 1984 )’ 영화도 원래는 도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헐리우드의 배신으로 결국 데이빗 린치 감독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만들었더라면 아마 더 훌륭한 오리지널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Fando y Lis, 1968)가 멕시코 극장에 상영될 때, 그 도시 깡패 보스 한명이 그 영화를 너무 혐오하여 조도로프스키 감독을 죽이려고 까지 마음 먹었다. 그럴정도로 관객의 신경을 건드린 영화였다. 그 깡패에게 위스키 선물을 보내 둘이 친구가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런 감독의 영화들도 한번은 볼 기회를 가지라고 필자는 권하고 싶다. 거부 반응이 올 수 있어도 한번 이런 세계도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도 이젠 더 이상 멕시코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는 벌써 노장이 됐다. 스트린 쿼터 폐지 제도의 희생물이다. 멕시코에 계속 스크린 쿼터가 있었더라도 이런 천재감독의 작품이 계속 더 나왔을 것이다.
우리 나라도 이런 절차를 밟지 않기를, 관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영화인의 한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강영만 감독 홈페이지
http://www.youngmankang.com